Paper note
100년 추세추종의 불편한 진실
100년 넘게 통했다는 말은 강력하지만, 그 안에는 긴 부진과 구현 조건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.
In Plain Terms
이 글의 매력은 제목부터 강합니다. 100년 넘는 기간 동안 추세추종이 통했다면, 이건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시장의 오래된 성질처럼 보이거든요. 추세추종의 아이디어 자체는 아주 단순해요. 최근 오르고 있는 시장은 조금 더 오를 것에 걸어 사고, 최근 내리고 있는 시장은 조금 더 내릴 것에 걸어 파는(숏) 겁니다. “손실은 짧게 끊고, 이익은 달리게 둔다”는 오래된 격언을 규칙으로 옮긴 것에 가까워요.
하지만 여기서 조심할 게 하나 있습니다. “100년 동안 통했다”는 말은 “매년 통했다”는 뜻이 절대 아니에요. 긴 기간 평균적으로 보상받았다는 말과, 개인 투자자가 지금부터 3년이나 5년을 편안하게 버틸 수 있다는 말은 완전히 다릅니다. 이 논문의 진짜 가치는 매력적인 평균 숫자가 아니라, 그 평균이 나오기까지 어떤 조건과 어떤 고통이 필요했는지를 100년치 데이터로 보여준 데 있어요.
The Strategy
논문이 다루는 건 개별 종목 타이밍이 아니라 시계열 모멘텀(time-series momentum) 이라고 부르는 다자산 추세추종입니다. 한 시장의 과거 수익률 부호만 봅니다. 지난 구간에 올랐으면 롱, 내렸으면 숏이에요. 이걸 주식·채권·통화·원자재 전반에 걸쳐 동시에 적용합니다. 논문은 원자재 24개, 주가지수 11개, 채권 15개, 통화 9쌍, 합쳐서 약 59개 시장, 4개 자산군을 대상으로 했어요. 선물 데이터가 있으면 선물을, 없으면 현금 시장 수익률을 써서 표본을 약 1903년부터 2012년 6월까지 늘렸습니다.
신호는 한 가지 되돌아보기(lookback)만 쓰지 않아요. 1개월·3개월·12개월 시계열 모멘텀을 각각 계산해 동일가중으로 합칩니다. 짧은 창은 빠른 전환을, 긴 창은 큰 추세를 잡으려는 조합이에요. 그리고 결정적으로, 각 시장의 포지션을 변동성에 맞춰 크기 조절합니다. 조용한 시장은 크게, 요동치는 시장은 작게 실어서, 어느 한 시장이 포트폴리오 전체를 흔들지 못하게 해요. 이렇게 합쳐진 전략은 사전 변동성 목표를 연 10% 로 맞춥니다.
여기서 개인 투자자가 놓치기 쉬운 핵심이 나옵니다. 이 전략의 힘은 “무엇을 사느냐”가 아니라 “얼마나 넓게, 얼마나 롱-숏으로, 얼마나 분산해서 담느냐”에서 나온다는 점이에요. 수십 개 시장의 서로 다른 추세가 섞여야 각각의 부진이 상쇄되고, 숏이 가능해야 하락장에서 방어가 됩니다. 이 조건들이 뒤에 나올 이야기의 전제예요.
Reality Test
논문이 보고한 전체 표본(1903년–2012년 6월) 성과는 인상적입니다. 모의 거래비용을 뺀 총수익(gross)이 연 약 20.0%, 여기에 매니지드 퓨처스에서 흔한 2/20 수수료(운용보수 2% + 성과보수 20%) 를 마저 빼면 연 약 14.3% 였어요. 실현 변동성은 연 약 9.9% 로 주식의 절반 수준이었고, 순수익 기준 샤프지수는 약 1.00 이었습니다. 주식(S&P 500)과의 상관관계는 약 -0.05, 미국 10년 국채와도 약 -0.05 로 사실상 무상관이었고요.
두 가지 단서를 나란히 봐야 합니다. 첫째, 이 숫자들은 실제 펀드의 실현 성과가 아니라 규칙을 과거에 적용한 모의(hypothetical) 백테스트 결과예요. 둘째, 그럼에도 이 연구가 데이터 스누핑 방어에서 강한 이유는, 시계열 모멘텀이 학계에 문서화된 건 대체로 1985년 이후인데 이 논문은 그보다 약 80년 앞선 구간까지 표본 밖(out-of-sample) 으로 밀어 넣고도 성과가 각 10년 구간마다 양(+)이었다는 데 있습니다. 대공황, 두 차례 세계대전, 스태그플레이션, 2008년 금융위기를 모두 포함하고도 무너지지 않았어요.
다만 시기별 편차는 큽니다. 가장 강했던 10년은 1973년–1982년 으로 총수익 연 약 40.3%, 샤프 약 1.89였는데, 이 구간은 미국 10년 국채 금리가 6.4%에서 10.4%까지 치솟던 극단적 추세장이었어요. 반대로 가장 최근 구간인 2003년–2012년 6월 은 총수익 연 약 11.4%, 수수료 차감 후 약 7.5%, 샤프 약 0.61로 과거 평균보다 눈에 띄게 약했습니다. 논문 스스로도 “최근 성과가 실망스러웠다”고 인정하면서, 다만 역사적 맥락에서 이례적으로 나쁜 수준은 아니라고 해석해요.
Pain Points
(1) 긴 부진과 자체 최대낙폭. 방어 자산이라는 이미지와 달리, 전략 자체도 깊고 긴 침체를 겪습니다. 논문이 집계한 이 전략의 최대 낙폭은 1947년–1948년에 약 -26.3% 였고, 저점을 찍기까지 21개월, 이전 고점을 회복하기까지는 무려 84개월(약 7년) 이 걸렸어요. 두 번째로 큰 낙폭은 1939년의 약 -20.7%, 비교적 최근인 2009년에도 약 -13.5% 하락이 있었습니다. 100년 평균이 좋다는 말과, 개인이 7년짜리 회복을 감정적으로 버틸 수 있다는 말 사이의 간극이 여기서 드러납니다.
(2) 좁히면 사라지는 장점. 이 전략의 방어력은 “수십 개 시장 + 숏 + 변동성 조절”이라는 폭에서 나옵니다. 개인이 이걸 미국 섹터 ETF 몇 개나 롱온리 상품으로 줄이면, 숏에서 나오는 하락장 수익 성분이 통째로 빠지고 자산군 분산도 사라져요. 남는 건 “미국 주식 내부의 회전율 높은 추세 매매”에 가까워지고, 이건 논문이 측정한 것과 성격이 다른 전략입니다. 백테스트에 찍힌 100년 숫자를 축약된 상품이 재현할 것이라 기대하면 안 돼요.
(3) 붐비는 시장과 늘어난 상관. 논문은 미래를 낙관만 하지 않습니다. 시스템 추세추종의 운용자산이 1999년 약 220억 달러에서 2012년 2,600억 달러 이상 으로 불어났고,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장 간 상관이 높아지면서 서로 독립적인 추세의 수가 줄었다고 지적해요. 독립적인 추세가 줄면 분산 효과가 약해지고 위험조정 수익도 낮아질 수 있습니다. 개인에게는 여기에 세금과 불리한 체결 조건까지 더해져, 총수익과 실제 손에 쥐는 순수익의 간극이 논문 숫자보다 크게 벌어질 수 있어요.
How It Connects Here
이 노트는 “왜 섹터 모멘텀만으로는 부족한가”를 설명하는 축입니다. 개별 종목의 상대 순위를 다루는 모멘텀 논문(제가다시·티트먼 1993)이 단면(cross-sectional) 쪽 이야기라면, 이 논문은 한 자산의 과거 대비 현재를 보는 시계열 추세 쪽 이야기이고, 둘 다 “신호는 진짜인데 개인이 끝까지 버틸 수 있는가”라는 같은 질문 위에 서 있어요.
The Verdict
추세추종은 단순 보유(Buy and Hold)의 좋은 보완재가 될 수 있습니다. 실제로 이 논문은 60/40 포트폴리오에 시계열 모멘텀을 20%만 섞었을 때, 같은 구간에서 최대낙폭이 약 -62%에서 -52%로 줄고 샤프가 약 0.34에서 0.57로 올랐다고 보고합니다. 60/40이 겪은 10대 위기 구간 중 9번에서 이 전략이 양의 수익을 냈다는 점도 방어 엔진으로서의 매력을 뒷받침해요.
하지만 그 매력은 어디까지나 넓은 다자산·롱-숏·변동성 조절이라는 구현 조건 위에서만 성립합니다. 이걸 단순 ETF 회전 전략으로 축약하면 기대했던 방어력과 성과가 동시에 약해질 수 있어요. Doing nothing을 이기려면 100년 평균이 아니라 훨씬 가까운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. 지금 내가 실제로 구현 가능한 방식으로, 비용과 세금 이후에도, 7년짜리 회복 구간을 견디면서 유지할 수 있는가.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없다면, 화려한 100년 숫자는 나의 것이 아닙니다.